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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은 아득히 깊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의 아버지라면, 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브로플로프스키 가문은 유서 깊은 법조계 가문이었다. 카일은 그 길에서 벗어나 버렸고, 그의 동생 또한 그랬다. 아이크가 대단한 거상이 되었다는 걸 그는 들었다. 그리고 카일은 천문학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푸른 밤하늘에 매료되었다. 그는 그것을 사랑했고, 가족들은 처음엔 취미겠거니, 하고 넘겼다. 그는 요하네스 케플러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책들을 읽었고 코페르니쿠스의 책들을 몰래 읽기도 했다. 카일은 짙푸른 고등어 등짝빛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사랑했다.

 

결국, 카일은 제랄드 브로플로프스키와 실컷 싸우고 나가버렸다. 어떻게 된 일이냐면, 그의 우주에 대한 앳되고 부드러운 욕망은 점점 부풀어 올라만 가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법학 공부는 점점 데면데면하게 하게 되고, 제랄드가 입버릇처럼 말하며 기대하던 그 노력가적 성품으로 천문학 논문을 써서 왕립 협회에 보내 수상을 하고, 결국 천문대장(長)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카일의 국왕 스탠리 마쉬는 어리다는 리스크를 극복하고 상당한 세력을 움켜잡았다. 그의 특이한 점은,  물론 일식이나 월식을 알아내고, 한 해 농사를 점친다는 점에서 중요하긴 했지만 흔히 귀족들이 유희거리로 여기는 -티코 브라헤 같은 위대한 학자는 예외로 하자- 천문학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과 동갑인 이 천문학자에게 친밀감을 가지게 되어서, 차를 함께 마시기도 했다. 처음에 바짝 얼어 있던 카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편해지게 되었다. 

 

선왕과 스탠과의 관계는 다이나믹했다. 선왕은 그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기준에 달성되지 못했을 때 쉽사리 회초리를 마구 휘둘러 댔다. 그럴 때마다 스탠은 별을 보았다. 가정교사 선생들마저 안타까워 할 때마다, 스탠은 덧창을 몰래 열고 기어올라가 별을 보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그의 마음에 있던 이상에 대한 갈구는 하늘과 세계에 대한 깊은 욕망을 심어주었다. 지나친 선왕의 지배욕과 비정상적인 성미는 스탠 마쉬를 적당히 비뚤어지고 시니컬한 청년으로 자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비상한 용인술과 세련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이상적이면서도 찌들어 현실적이었다. 그는 그가 만들 국가를 계속하여 마음에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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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별 삼매경에 빠져있을 때 주로 이런 대화를 나누곤 했다.

 

"우와, 이게 금성이오? 저번에 설명했던 것처럼.."

 

"그렇사옵니다 전하."

 

"저기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신이라면 아시겠지," 스탠의 눈이 아득해졌다.

 

스탠 마쉬가 유일하게 그 나이 또래다운 모습을 보이는 건, 그 곳이 왕궁의 숲, 외진 데에 있는 조용한 천문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그의 냉소적인 분노를 이해해 줄 수 있을 만한, 대체로 합리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도 날이 서 있는 카일 브로플로브스키와 죽이 잘 맞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들은 점점 친해지게 되었다.

 

그 날은 예외적인 날이었다. 스탠과 카일은 천문대 옥상에 누워서(심복은 옷이 더러워지고 위신이 떨어진다고 스탠을 말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별을 쳐다보면서 여러 이야기들을 해 나갔다. 

 

"고민이 있소," 스탠이 불쑥 말했다.

 

"무엇이십니까, 전하" 

 

"편하게 말하시오, 뭔가 참 부담이 되는 거 같소,," 한숨을 쉬는 스탠이었다.

 

뭐라고 부르지요, 카일이 살짝 당황해서 쩔쩔매자 스탠은 그냥 그대로 부르라고 손을 들었다.

 

"우주는 너무나 아름답소, 신이라면 저 모든 비밀들을 샅샅히 알고 계시겠지요. 인간은 그런 신의 섭리를 조금씩만 알아나갈 수 있는 미약한 존재일 뿐일지도 모르겠소, 저런 우리가 알 수 없는, 조화로운 우주와는 다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슬프오. 나는 나의 부친과 관계가 좋지 않소, 아마 소문이 자자한 걸로 아노만,"

 

카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한 번은 어릴 적, 내 친구와 갇혀 있었던 궁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소, 그 친구는 잡혀서 험한 꼴을 당했소,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아시오? 내 또라이같은 가정교사에게 맡겨졌소! 결국은.."

 

"결국은요?" 카일은 궁금한 듯 물었다.

 

"하, 하튼.." 스탠은 고개를 돌려 헛기침을 했다.

 

개리슨 선생은 스탠의 가정교사로서, 온갖 이상한 기행들을 선보였다. 스탠의 친구는 결국 개리슨 선생과 피가학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고, 잘 맞는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정상적이었던 친구가 엉덩이를 맞으며 신음을 흘리는 걸 원치 않게 본 스탠은 충격에 빠져 몇 달 동안 사람들을 만나는 걸 꺼리게 될 정도였다.

  

"세상은 슬프단 말이오," 스탠은 냉소적으로 말했다. 

 

"군을 징집하고, 세금을 걷어들여야 하고, 나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요, 그럴 때 마다 잘못되었다. 잘 되었다 그렇게 평가를 받고 또 내 마음 속에서 평가를 하는데, 그게 그토록 괴로울 수가 없소. 나는 잘 하고 있는 걸까. 신께서 바라시는 걸까. 나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저 별을 보면서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지도 모르겠소.." 스탠은 한숨을 쉬었다.

 

카일은 자신도 모르게 스탠의 어깨를 다독이고 있었고, 스탠은 놀란 표정으로 카일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그 때 찬 공기가 카일의 몸을 감아들었고 그는 살풋 떨었다. 스탠은 자신의 옷을, 말리는 심복을 뒤로 하고 카일에게 덮어주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튼 그래도 자네를 만나서 다행이오." 스탠이 분위기를 띄우려 밝게 이야기했다. 카일이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부친은 법조인이셔서, 제가 항상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셨지요, 지금은 의절하다시피 하고 살고 있지만," 카일은 씁쓸하게 웃었다.

 

"몰래 계속 밤에 천문학 논문을 쓰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에 괴롭게 살아가야 했어요. 만약 제가 이 길로 나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항상 고민하고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별을 보면서 산다는 것도 참 힘들 때도 있어요,  가끔은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거나, 연구 자료가 다 날아간다던가. " 

 

'지나치게 외롭다던가,' 카일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제 일은 전하에 비해 너무나 가벼워 보이는 일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이상을 현실에 맞추어서 적당히 이루어나가면서 각자 살고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을 해 봅니다" 하고 카일은 자신도 모르게 편하게 말했다.

 

스탠은 그런 카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웃었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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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카트맨은 아이크 브로플로프스키의 경쟁자이기도 한 대상인이었다. 어디서 나타나 그가 그런 거상이 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타고난 언변으로 수도의 상권을 꽉 움켜쥔 그는 왕에게 잘 보여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그래서 소식통의 조언에 따라 왕이 사랑하는 천문대를 후원하게 되었다. 왕 앞에서는 '손바닥을 잘 비비는' 주제에, 카트맨은 별을 쳐다보는 것이 굉장히 무용하고 쓸데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이따금씩 자신의 돈을 가지고 카일이 잘 하고 있나 못 미더워 곁을 얼쩡거리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딴 나부랭이 가지고 뭐하는거요?"

 

"... 그딴 나부랭이가 아닙니다." 하고 별의 움직임을 기록한 자료를 보고 있던 천문학자가 돈 많은 상인을 쏘아보았다.  

 

"쓸데없긴.." 조용한 뇌까림을 카일은 가뿐히 무시했다. 너무나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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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카일이 잔뜩 지쳐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길에 카트맨이 그를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나으리" 카일은 최대한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하려고 노력했다. 

 

카트맨은 비뚜름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별에 미친 양반, 그래서 오늘 운수는.."

 

"별점같은 건 점쟁이에게 물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들은 카일이 질려 말을 잘랐다.

 

"쳇, 그래서 우리 별쟁이 양반은 일도 안하고 어디로 가시나? 카트맨이 질린 듯 까칠하게 물었다.

 

"집으로 갑니다, 이제 근무 끝나고 쉬려고요" 카일이 대답했고 카트맨은 못마땅하다는 듯 바닥을 발로 툭툭 쳤다.

 

"오늘은 나와 함께 있어줄 시간도 없는 건가?"

 

'지가 늦게 와놓고선..' 카일은 조용히 속으로만 투덜댈 수 밖에 없었다. 

 

카트맨은 일을 하며 머리를 굴리는 것 보다는 이렇게 후원 핑계로 노닥거리는 것이 퍽 좋은 거 같았다.

 

사실 처음부터 카트맨이 이렇게 카일에게 막 나간 건 아니다. 서늘해보이기까지 하는 눈초리로 후원해야 할 천문대의 사정이라던지, 비품 현황을 주욱 살펴보고, 장부도 쭉 살펴보는 그의 모습에 등골 끝까지 긴장을 했던 자신의 모습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비품은 이런이런 것들이 있군요, 저건 무엇이오?" 카트맨이 냉연하고 꼿꼿한 태도로 물었다.

 

"저건 망원경입니다. 다른 것이랑 다르게 들고 볼 수 있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 그럼 됐고, 예산을 어느 정도로 바라나?"

 

"적어도 이만큼은 주셔야 합니다." 카일이 작성한 내역을 내밀었다.

 

"여기서 더 아낄 수 있는 게 더 있지 않소? 나는 내 돈이 합리적으로 쓰이길 바라오"

 

"최대한 아끼고 현실적으로 계산한 비용입니다." 카일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카트맨은 말없이 목록을 보고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고, "알았소, 이만큼 해 주겠소, " 하고 말을 짤막하게 남긴 후 휑하니 가 버렸다.

 

카일은 빈 천문대에 멍하니 서 있게 되었다.

 

사실 그는 그렇게 돈만 대주고 코빼기도 비치지 않을 작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카일은 매 감사 때마다 야무지게 그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을 설명해주었고, 카트맨은 무심한 얼굴로 그저 '별거 아닌 것처럼' 그것들을 바라볼 뿐이었다.-사실 카트맨 자신에겐 별게 아니기도 했다.-카일은 어쩐지 그런 게 느껴지자 자존심때문에 더 잘 설명을 했고, 카트맨은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건 카일이 일이 생겨서 후원을 더 해 달라고 그를 따라다닐 때에도 그러했다. 

 

카트맨은 결국 귀찮았는지 본심을 드러냈다. "이보쇼,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하나도 없고, 단지 폐하를 위해 후원하는 것뿐이야. 그저 내 돈이 낭비되지 않길 바랄 뿐이야. 이깟 나부랭이가 도대체 뭐가 중요하냐?" 카트맨이 조용히 투덜댔다. "더 이상 내가 대주는 것 외에는 후원을 바라ㅈ.."

 

 카일이 몸을 꼿꼿이 세우고 '대들었다'. "천문학은 그런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이, 이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는 것이 어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는 학문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카트맨의 본심이 한번 입에서 튀어나오자, 카일은 자신도 모르게 천문학이 얼마나 멋진지에 대해서 이렇게 바락바락 이야기했고, 상인은 처음으로 카일을 향해서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해서, 카트맨은 카일이 하는 일을 하나하나 책잡고 비꼬기 시작했고, 카일은 그에 맞서서 예를 갖추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했다. 그 둘의 기묘한 말다툼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맞다니까요?”

 

“진짜? 아니라니까, 분명." 

 

그래서 이 사단이 나고 만 거다. 카일과 카트맨은 사소한 일이나 견해, 크게 나아가 과학적인 사실,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수많은 이견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논쟁을 하면서 어이없게도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서로서로 어이없을 정도로 속속들이 알게 될 무렵, 그 때 쯔음, 이렇게 지쳐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카일과 카트맨이 이야기를 하게 된 거다.

 

"그래서, 잘 지내시고?"

 

"나으리 덕분에 잘 지냅니다." 카일이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놀렸고, 카트맨은 흡족한, 그러면서 놀리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잘 지내지 못하는데," 카트맨이 농담조로 말했다.

 

"왜요?"

 

"사실, 우리 어무이가 그리 몸이 좋지 못하걸랑, 게다가 네 동생새끼는 상권가지고 나에게 지랄을 하걸랑. 미칠 거 같더라."

 

"아 예 그러시겠죠..." 카일은 눈을 굴렸다.

 

"진짜야, 진짜라니까?!.." 카트맨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과장된 어조로 이야기했다. 

"

그렇군요.." 카일은 생각했다. 아무리 이 또라이같은 후원자라도, 걱정은 있고 힘든 일도 있었을 거리라. 그리고 사실 어머니가 안좋다고 할 때 카트맨의 눈은 퍽 걱정스러워 보였고, 아이크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짜증이 가득 차 보였다. 그렇게 보였기 때문에,

 

"조심히, 후원자님의 문제들이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네요." 카일이 신중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고, 놀랍게도 카트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리고 카트맨은 다른 이야기로 말을 돌려 주변 지역 상인들이 자신에게 하는 지랄이며, 갑자기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 바닷속에서 나타나서 무역을 싹 다 망쳐 놓았다는 둥, 이상한 것들을 하소연하며 늘어놓았다. 그에 더하여 다행히 하늘을 나는 박하향이랑 나무열매향나는 녀석이 그 괴물을 물리쳤다는 것과, 요즘에 죽지 않는 이상한 킬러가 암약한다는거나, 엉덩이가 네 개 달린 원숭이가 태어났다는 둥... 온갖 잡소문들을 이야기했고, 이건 외로울 때가 많은 카일이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였다. 본인에게 물어본다면 죽어도 인정할 수 없었을 테지만,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으아 참 춥다, 넌 안춥냐?" 카일은 장난스럽게 왕이 준 모포를 들어보였고 카트맨은 놀랍다는 듯 그 비싼 물건을 감상했다. 

 

"별쟁아, 이거 어디서 났냐? 최고급품으로 보이는데," 카트맨이 카일의 등을 감싸고 있는 모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폐하가 주고 가셨었어요," 

 

"그래..." 카트맨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때, 카일이 추운 날 잘 들어가는지 미덥지 않아 확인하러 온 스탠 마쉬가 둘을 발견하였다.

 

"여기서 뭣들 하는 거요?" 그는 달갑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국왕 폐하," 대상인은 유려한 미소를 지으며 왕에게 인사를 했다.

 

카트맨은 장난으로 모포에 가려져 있는 카일의 손가락을 몰래 꼬집기 시작했다. 카일은 손을 스탠이 알아채지 못하게 살짝 뺐다.

 

"춥길래 잘 들어갔는지 걱정이 되어서 와 보았소,"하고 스탠은 따뜻한 표정으로 카일에게 말했다.

 

"자네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스탠이 물었고, 카트맨은 "그저 제가 후원하는 이 천문학자가 잘 있나 궁금해서 왔습니다, 하고 웃어보였다.

 

카일은 '어련하시려나,' 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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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카일이 스탠을 만났을 때, 스탠은 카트맨이 카일을 후원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그 사람, 자네를 못살게 구나? 꽤나 영악하고 교활한 상인일세..." 

 

카일은 웅얼거렸다. "그렇긴 한데... 그게 꼭 나쁘지만은..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요.."

 

스탠의 표정이 카일의 변명아닌 변명을 들으며 점점 굳어 갔다. 그는 가끔 엄마새처럼 카일을 감싸려고만 들었다. 카일에게 고충이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지 항상 고민하는 임금이었기에.

 

"더 이상 그 사람에게 후원을 바라지 않아도 되오, 내가 후원해줄 테니까," 왕이 웃었다.

 

문제는, 카트맨이 더 이상 떠들지 않는 천문대가 상당히 심심했다는 것이다.

 

카일은 어쩐지 점점 더 외로워졌다. 왕이 갑자기 정무로 엄청나게 바빠졌다는 것도 그 이유중 하나로 더해졌다, 스탠은 만나게 되어도 지친 얼굴로 점점 더 말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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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너무나 사적인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어, 라고 카일은 생각했고, 친구를 사귈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어리숙하지만 근면한 조수 버터스에게 일을 맡기고 사교회에 나갔다. 하지만 별자리 점을 가지고 시달림을 당하게 되어 겨우 자리를 피했고, 자신과 비슷하게 역시 사람들을 물리치고 나온 듯한 카트맨이 조용히 포도주를 마시면서 생각에 빠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이구, 이게 누구신가, 천문학자 양반 아니신가," 포도주가 찰랑 넘칠 듯하게 잔을 들며, 카트맨이 환영하듯 두 팔을 벌렸다.

 

카일은 그를 쳐다보고, 살짝 긴장해서, 반가움과 귀찮음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반가워요," 카일이 웃었다.

 

"그래, 반갑네," 카트맨도 웃었다.

  

"어쨌거나, 여기에 무슨 일로 행차하셨나."

 

".. 알 바 아니에요!" 카일의 말에 카트맨은 입을 뾰족 내밀었다 넣었다. 그리고는 어허, 비싸게 굴지 말고, 츳, 하고 혀를 찼다.

 

카일은 그를 무시한 채로 포도주를 계속 마셨다. 천문학자는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저 멀리 부채질을 하고 있는 여자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고, 상인은 그 시선을 알아채고 웃었다. "오호라, 그런 목적이셨구만!" 카트맨의 말에 카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닌데요, 그렇다면 어쩔 건데요? 저를 훼방이라도 놓으시게요?"

 

"어허, 예의를 차려라,"

 

"더 이상 후원자도 아니신데요," 이번에는 카일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카트맨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손가락을 세워 카일의 가슴을 톡톡 쳤다, "너, 왕께 무슨 말을 했는진 몰라도, 안 좋은 말이면 내게 꽤 타격이 큰데," 카트맨이 사뭇 날카롭게 투덜거렸다.

 

"그렇게 나쁜 말을 하진 않았는데 왕께서..." 

 

"워낙 너를 아끼시다 보니?" 그가 못말린다는 듯 눈을 굴렸다.

 

카일은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은 진짜 너무 과잉보호하시는 거 같다니까요, 제가 뭐 어린애도 아니고.."

 

카트맨은 한숨을 쉬고, 근황에 대해서 묻고, 둘은 모처럼만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 놀러가도 되지?" 카트맨의 말에 "왕께서.."라고 말하려던 카일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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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맨은 도발적이고 야무진 카일의 표정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대상 에릭 카트맨이라면 다들 설설 기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도 그래, 보통 후원자라면 되게 진지빨지 않나. 저런 도전적이고 "네가 이 (카트맨 입장에선 얼어죽을) 학문에 대해 꼭 흥미를 느끼게 만들겠어!" 같은 표정 따위. 그는 그래서 자꾸 카일을 엿을 먹여서 그 표정들을 즐겨 만들어보곤 했다. 그가 앙심을 품고 왕의 일을 많이 만든 건 말할 필요가 없다. 자기가 없어서 심심해 사교 파티에 나온 줄 알았던 카일이 여자를 만나고 싶어했었다니. 뭔가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카트맨은 카일을 만졌던 손톱과 손가락을 만지작댔다. 찌릿찌릿했던 그 때의 느낌이 느껴졌다. 카일의 가슴뼈의 느낌.

 

카일은 왠지 억울하게 덤탱이를 뒤집어쓴 느낌으로 집으로 향했다. 조수 버터스가 그에게 말했다 "폐하가 오셨다 급한 일이 있어서 어디 가신다고 나가셨어요! 다시 돌아오실 거래요." 그는 찻잔을 들고 의자에서 쉬다가 벌떡 일어났다. "뭐, 뭐라고? 하필 오늘... 그나저나 많이 못 만날텐데..." 카일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했어, 버터스?"

 

"그, 그냥.. 폐하가 천문대장님이 어디가셨냐고 물어보셔서 저는 사교 파티에 갔다고 했고, 무슨 일로 거기에 갔냐고 물어보시길래 아마 괜찮은 여성분들을 보러 간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서 말씀드렸죠,"

 

카일은 머리를 짚었다. "버터스..." 

 

그 때 스탠이 다시 들어왔다. "오 그래, 마침 돌아왔구만!" 그의 얼굴에 화색이 만연했다. 부끄럽고 미묘한 표정이 카일의 얼굴에 스쳤고, 스탠은 카일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은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내게 말해보지 그랬어,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주겠네, 라고 웃으면서 빠르게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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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웃으며 나왔지만, 카일에게 어떻게 좋은 여자를 구해준다, 스탠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나저나, 그에게는 선왕이 정해준 정혼자가 있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가 스탠의 불행한 성장과정에 연민을 느꼈고, 잘 대해주려 했지만 냉정하고 형식적인 반응만 얻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는 친우 카일을 생각했다. '그에게 괜찮은 여자를 구해줘야지...' 하고 다시 그는 읊조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날을 세운 채로 정무에 임했다. 카일이 원하는. 카일에게 어울리는 연인은 누가 있을까. 정숙하고, 아름답고, 그처럼 다정하고 즐거운 사람이어야겠지. 스탠은 밤에도 그것을 생각했다. 그는 갑자기 드는 공허하고 멍한 감정에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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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맨이 무심코 물었다. "저 별은 뭐야?"

 

카일은 못 볼 걸 본 거 같은 사람처럼 카트맨을 처다보았다. "뭐 왜 뭐." 카트맨이 투덜거렸다.

 

"아뇨, 그냥.. 처음으로 별에 대해서 묻는 거 같아서요."

 

카트맨은 빠른 속도로 일식과 월식, 그리고 조수 간만과 달의 기울임과의 관계, 멀리 있는 행성들에 관한 질문을 잔뜩 하면서 우주에 대하여 알아나갔고, 그것들을 카일의 생각보다 주의깊고 진지하게 이해하며 들었다.

 

밤하늘을 보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카일의 얼굴을 그는 잠시 멀거니 바라보다가 같은 방향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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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왜 여기에 있소," 

 

스탠은 카일이 교활한 상인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게 불쾌했다. 카일은 우주와 가까이 있는, 자신과 이야기할 수 있는, 순수한 사람이어야만 했다. 카트맨에 대한 흉악하고 비정상적인, 예컨데 자기 부친을 죽여 소스로 만들어 이복 형에게 먹였다느니 하는 기괴한 소문들이 간간히 들려왔기에, 그에게 안좋은 영향을 준다거나 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친구였던 자 같은 꼴을 볼 수 없었다. 혹시 카일이 약점을 잡힌 것은 없나, 후원을 받을 당시엔 사이가 좋지 않아 보였는데, 라고 생각하며 스탠은 거슬리는 마음을 추슬러야만 했다.

 

"안녕하세요 폐하!" 카일이 화들짝 놀라 움찔대며 인사했고, 카트맨도 고개를 숙여 보였다.

 

카트맨은 스탠을 보고 웃었고, 예상했던 못 미덥고 불쾌한 표정을 보고 있었다. 카트맨은 왕이 그를 감싸고 돌며, 그가 외롭다는 것을 모르면서 부담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해 왔다. 자신이 놀러 오기 전, 홀로 망연히 서 있는 카일의 표정을 카트맨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외로워 보였다. 그가 사랑하는 일을 하려면 그건 마땅히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일이였으리라, 하지만 그 표정은 싫었다. 그리고 그건 분명 감싸도는 왕이 어느 정도 기여는 했다.

 

카일은 둘의 속도 모른 채로 이야기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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